[씨줄날줄] ‘위기에 처한 유산’

서동철 기자
수정 2025-07-18 01:11
입력 2025-07-18 00:30

엊그제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한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의 울산 반구천 암각화와 남북을 굳이 가릴 이유가 없는 민족의 영산(靈山) 금강산을 새로운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더불어 2026년 제48차 위원회 개최지로 부산을 선정했으니 우리에겐 겹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부산 세계유산위는 당연히 한국의 문화유산 및 보존 노력에 대한 196개 회원국의 이해를 크게 높일 것이다.
파리에선 호주의 대표적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산호초)의 보존 상태에 대한 우려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앞서 유네스코는 대산호초 현지조사를 거쳐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크게 오르면서 대산호초의 백화 현상이 너무 빨라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내년 부산 위원회에서 대산호초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넣을 것인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올린 뒤 진정성이 훼손될 위기에 이르면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올린다.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유산 등재를 해제한다. 세계유산위는 앞서 영국의 리버풀 해양산업도시와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구역을 세계유산에서 축출했다. 한결같이 개발을 위해 세계유산 타이틀을 스스로 포기한 사례다.
‘위기에 처한 유산’ 등재에 이은 세계유산 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울산 시민들은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환호했다. 하지만 사연댐 수위 대책에 실패해 암각화가 지금처럼 잠수를 반복한다면 세계유산에 오르자마자 ‘위기에 처한 유산’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세계유산인 조선왕릉도 김포 장릉처럼 초고층 아파트에 하나둘 둘러싸이기 시작하면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 점에서 부산 세계유산위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민의 문화유산 보존 의식을 높이는 새로운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5-07-18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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